[웹툰 리뷰] 후궁공략
※해당 웹툰은 미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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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상현실 게임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현실감이 반감된다고 느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현실→작품 속 현실→작품 속 게임 속 현실'이라는 가상 속의 가상 현실이라는 것은 정말로 멀게 느껴지곤 한다. 특히나 친숙하지 않은 게임은 더더욱 몰입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지 않을까.
다만, '후궁 암투'라는 테마는 어느정도 익숙한 세계관이기는 했다. 황제의 총애를 받아 신분 상승을 꿈꾸는 스토리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겨울 정도로 다양하지 않나. 게다가 플레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성과 가상현실이라는 신기술이 접목한 게임이라서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거기다가 그 가상현실의 정교함을 스토리 내에서 충분히 설명해줘서 더욱 설득력이 있고, 세계관에 몰입하고 공감하기에도 좋았다.
가상현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어느 정도 현실 도피인 것 같다. 주인공이 자유롭게 접속하고 종료할 수 있는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그런 현실 도피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을 텐데, 이 웹툰의 가상현실 게임은 미완성인 상태로 무단 접속한 3명의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그린다. 불완전한 게임이기 때문에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채 게임 속 세상에 갇히고 만다. 게임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현실 세계의 기억을 일부 잃기도 하고, 기존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이벤트와 퀘스트가 잇따라 혼란스럽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게임이 사실은 전혀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라는 사실은 그 현실 속에서 몸 하나로 맞부딪쳐야 할 플레이어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그렇지만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야말로 게임의 필수요소이고, 독자로서도 그 편이 훨씬 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웹툰 '후궁 공략'의 배경은 무려 2035년이다. 그러니 장르에는 로맨스판타지 말고도 SF를 추가해야 한다. 이공계 기술에는 박식하지 않지만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이거야말로 이과의 감수성인가!!!!) 가상현실과 인공지능(AI)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설득해줘서 이 비현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쑥 빠져들었다.
독자로서도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 속 세상이니까'라고 생각했다면 이 후궁 암투가 그다지 긴장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을 텐데,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매우 정교한 세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읽는다면, 훨씬 긴박감 있게 읽히기도 한다.
3세대 가상현실은 기존의 가상현실에서 더 진화해 "서란희를 조종하는 것이 아닌 서란희 그 자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현실과 또 다른 완전한 세상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삶들".
가상현실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었던가? 여태껏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아주 흥미롭기도 했다. 현실도피란 어쩌면 사람의 본능과도 유사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 평소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나는 일, 그런 것들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것도 이런 본능 때문이 아닐까.
'제2의 나', '다중 페르소나', '부캐'와 같은 단어가 익숙한 현재를 고려한다면 이 웹툰, 굉장히 트렌디하다. 후궁 암투 같은 친숙하다 못해 얼핏 거부감이 드는 소재를 선택했지만, 사실 스토리에도 불만은 없다.
후궁암투라는 소재에 대해서 염려하는 예비 독자를 위해 덧붙이자면, 어쩌면 후궁들끼리 말 그대로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하는, 그런 클래식한(?) 후궁 암투를 상상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궁중 로맨스에 가깝다. 황제는 전제 군주로서 어쩔 수 없이 제도의 유지를 위해 후궁 제도를 이용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주인공 서란희 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황제의 비밀은 뭘까? 이제 슬슬 끝나가는 것 같은데(?) 너무 궁금한 황제의 정체. 그는 플레이어인가, NPC인가.
그리고 그림체도 독특하고 예쁘다.:)
화려한 듯 심플한 듯 과하지 않고 한국적인 요소, 중국적인 요소, 일본적인 요소가 섞여 들어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