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박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aonuri 2023. 7. 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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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말이다.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말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선택을 갈등할 때 떠올리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선택'에 대해 고민하자면 항상 떠오르는 건 이직과 관련한 경험이 떠오른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두 번 퇴사를 경험했는데(최근 3번째 퇴사를 한 참이다) 같은 선택이더라도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첫 번째 퇴사는 방식은 후회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퇴사는 어째서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아마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한 이후에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자존감이 많이 깎였던 것 같다. 한창 젊은 나이였는데도....
세 번째 다니는 현 직장은 어느새 3년차에 접어들었고 소위 말하는 3.6.9 법칙이 작동할 연차가 되었다.
 
직장인은 매일 근속이냐 퇴사냐를 두고 고민한다.(직장인은 다들 품에 사직서 한장씩을 품고 다닌다는 말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제 확실하게 안다.
버티는 것도 선택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버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

 

 



사르트르가 떠오른 이유는 친구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친구가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하소연했다. 나는 그 회사에서 친구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에 항상 퇴사를 권했지만, 친구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절망적인 어조로 일관했다.

자기가 일을 잘 못한다는 생각에 조울증까지 얻어서 도무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안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다소 안타까웠다.
 
물론 실패를 각오하고 한 발을 내딛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면, 선택하는 것이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선택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행동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언제까지도 선택을 보류할 수는 없을 테니, 선택의 순간에 후회가 조금이라도 적어지도록 미리 조금씩이라도 준비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선택할 준비가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덜 불안하도록.

선택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므로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럼에도 선택에 참견하는 것조차도 개인의 선택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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