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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가상공간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 정주행, 떠오르는 노래

by aonuri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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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된다는 걸 알고 뒤늦게 보기 시작한 뒤탈을 감당하는 중이다.
웹툰화가 된 지도 벌써 5년 넘게 지났다니....


 
웹소설('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3가지 방법'. 줄여서 '멸살법'이라는 비인기 웹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었다는 세계관이다.
도깨비 채널에서 창이 표시되고 시나리오를 달성하면 보상을 받고 성장한다는 세계는 너무나 '게임' 같지만,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이고 실패하면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상황은 극도의 긴장감을 준다. 아포칼립스 묘사가 자극적이고 절망적이어서 차라리 웹툰으로 시작하길 잘했다 싶다.
 
'독자'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아주 기발하다. 아니, 독자가 주인공으로 빙의하는 소재는 많지만 독자가 제3자에게 관찰당하는 시점은 새롭게 느껴졌다. 원작의 주인공은 따로 존재하지만, 주인공이 둘인 것도 재미있었다. 오히려 좋다.
 
독자는 원작의 전개, 설정, 세계관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시나리오를 쉽게 클리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로 진행되면 재미가 없지.(독자도 어쩌면 성좌와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소비한다.) 독자가 알고 있던 원래의 시나리오와 똑같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나리오 그 자체보다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든든한 선지자이자 단 하나뿐인 이해자가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까.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며 희생 없이 완벽한 결말을 보기 위해 관계를 맺어나가는 독자는, 냉혈한 유중혁조차 인간스럽게 변화시키는 것 같다. 유중혁이라는 캐릭터도 미남 캐릭터로 나와서 보는 재미가 있는데 독자와의 관계성도 흥미진진하다. '전우애'든 뭐든 오타쿠의 취향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전지적인 신의 위치에서 바라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 그 자체가 되어 소설 속 세상을 탐험한다. 그러므로 독자와 등장인물 간의 관계는 2인칭이나 3인칭보다 훨씬 더 밀접해질 수 있다. 독자가 언제든지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에게 빙의하고 등장인물들의 기술을 베껴오는 것이 '개연성'을 갖는 이유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꼽자면 바로 '개연성'이 아닐까? 
이야기를 이야기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그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절대적인 법칙. 반대로 개연성만 충족된다면 어느 정도 선을 넘어도 허용된다. 독자의 담대한 능력은 '제4의 벽'을 통해 '전지적 시점'으로 세계를 관망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세계관과 스토리가 친숙하면서도 새롭고,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이었다.  거시적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하게 느껴져서 퀄리티가 훌륭하다 느꼈다.
 
그리고 채널을 통해 인간들을 바라보며 후원금을 보내는 전지적인 성좌들에 대한 설정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현대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겠지.
더 다양하고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떤 면에서 근원적이어서 신들조차 매혹되고 마는 설정에도 납득하고 만다.
 

이야기는, 언제나 부족하다.
도깨비들은 여전히 더 큰 절망을 갈구하고
성좌들은 여전히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갈망한다.

 
여러모로 독자의 마음을 잘 아는 작가가 쓴 글이란 생각이 든다.
웹툰의 작화가 훌륭하고, 맞춤법도 거슬리는 데가 별로 없는 편이다.(원작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웹툰 대사답게 절제된 문체가 잘 어울리는 작품인 것 같다. 절묘한 밸런스의 번역투와 외래어와 한자어. 한자어와 외래어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재미있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품을 너무 늦게 만난 것 같다.
 
웹툰은 미완결인 것 같아서 원작을 보러 가려는데 너무 방대해서.
심지어 외전이 아직 연재중인데 외전으로도 책 몇 권은 나올 것 같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분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려나. 이것도 전략이겠지만.




그리고 뜬금없지만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우주 밖 절대적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접하고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일본 락밴드 원오크락의 노래 <皆無>.
몇 화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작중에도 유사한 묘사가 나온다.

本当はこの地球(ほし)も 誰かが作ったニセモノで
金魚のように水槽で 飼われてたとして
たまにくる雷や各地を荒らす地震でさえ
実は飼い主がイタズラで 遊んでるだけで


이 지구도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이고
금붕어처럼 수조에서 키워지고 있는 것이라면
가끔 치는 벼락이나 곳곳을 휩쓰는 지진조차
사실은 주인이 장난을 치는 것뿐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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