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일본어를 귀로 듣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 좋아 연습이지 본질은 덕질이다.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성우에 관심을 가졌다.
들은 적 있는 목소리를 귀가 식별해내면서 성우라는 존재를 인식했고 작품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표현해내는 놀라운 기술에 감탄했었다.
무엇보다 그 미성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나 할까.
굳이 찾아서 듣고 싶을 정도다.
아마 어렸을 때도 그랬던가 보다. 10년쯤 전에 잠시 드라마CD나 웹라디오 등에 심취한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잔재가 내 웹하드에 남아있었고.
그 MP3 파일들을 최근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들어보려다가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그 자료에 희소가치를 더해준 것 같기도 하고,
어느덧 내가 수록 당시 그들의 나이가 되어 들으니 묘하게 더 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딱 맞다.
영어든 일본어든 심지어는 한국어조차 아는 만큼 들린다.
예전에 한번 들었던 자료들일 텐데 안 듣고 저장만 해둔 건지 뭔지 몰라도 굉장히 새로운 기분이다.
그런데 청해라는 건 신경을 집중해야 들리는 것 같기도 해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딴짓하며 듣고만 있어도 머릿속으로 들어올 때도 있지만, 멍 때리다 보면 놓치기도 하고 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게 외국어의 벽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나의 집중력 부족이거나.
(지금도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긴 하다. 듣기의 또 좋은 점은 멀티태스킹을 하기 좋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멀티태스킹이 뇌에 안 좋다고도 하던데....)
어쩌다 놓치던 단어를 알아 들었을 때의 기쁨이란. 몰랐던 단어를 수집하는 재미가 있다.
그저 즐거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즐거움과는 또 색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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